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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 · 1503~1519년
모나리자가 지금처럼 유명해진 건 사실 그림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도둑맞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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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1503~1519년)
1911년 8월 21일 월요일, 루브르 박물관은 휴관일이었다. 이탈리아 출신 유리 세공사 뱅상 페루자는 박물관 직원 유니폼을 입고 태연히 걸어 들어가, 벽에서 모나리자를 떼어내 외투 속에 감추고 걸어 나갔다. 경비원과 마주쳤지만 "수리하러 가져간다"는 한마디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림이 사라졌다는 걸 박물관이 알아챈 건 그로부터 26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파리 전체가 뒤집어졌다. 신문 1면에 매일 모나리자 얼굴이 실렸고, 심지어 피카소가 용의자로 몰려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다. 정작 범인은 2년 넘게 파리의 자기 아파트, 트렁크 이중 바닥 안에 그림을 넣어둔 채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았다. 붙잡힌 건 그가 직접 그림을 팔려고 피렌체의 한 화상에게 연락하면서였다. "이탈리아의 보물을 조국으로 돌려주고 싶었다"는 게 그의 변명이었다.
아이러니한 건, 도난 이전까지 모나리자는 루브르에 걸린 수많은 초상화 중 하나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도난 사건이 전 세계 신문에 오르내리며 "그렇게까지 훔쳐갈 만큼 대단한 그림"이라는 인식이 생겼고, 되찾아온 뒤로는 관람객이 몇 배로 몰렸다. 지금 매년 천만 명 가까운 사람이 방탄유리 너머로 이 그림을 보러 줄을 서는 건, 상당 부분 이 도난 사건 덕분이다.
그리고 그 유명한 미소. 레오나르도는 윤곽선을 딱딱 긋는 대신 색과 색 사이를 안개처럼 뿌옇게 번지도록 칠하는 '스푸마토' 기법을 썼다. 그래서 입꼬리 각도가 볼 때마다 다르게 느껴진다 — 정면으로 보면 웃는 듯, 입 주변만 보면 무표정하게. 정답이 없는 미소를 일부러 만든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이 그림을 완성한 뒤에도 의뢰인에게 넘기지 않고 죽을 때까지 곁에 두고 다녔다. 프랑스로 이주할 때도, 말년에 병상에 누워서도 이 그림은 그의 방에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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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곽선 없이 색과 색 사이를 안개처럼 뿌옇게 번지도록 칠한 스푸마토 기법. 입꼬리 경계가 흐릿해서, 볼 때마다 미소의 각도가 다르게 느껴진다.
모델은 실제로 누구였을까
오랫동안 추측만 무성했는데, 지금은 정답이 거의 확정됐다. 2005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도서관에서 낡은 책 여백에 적힌 메모 하나가 발견됐다. 1503년, 피렌체의 공무원 아고스티노 베스푸치가 "레오나르도가 지금 리사 델 조콘도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고 적어둔 것이었다. 리사 게라르디니. 피렌체의 비단·직물 상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아내였다. 그래서 이탈리아어권에서는 지금도 이 그림을 '라 조콘다'(La Gioconda)라 부르는데, '조콘도 부인'이라는 뜻이면서 동시에 '유쾌한 여인'이라는 이중적 말장난이기도 하다.
왜 다빈치가 이 여자를 그리게 됐을까
가장 유력한 설명은 단순하다 — 남편 프란체스코가 아내의 초상을 주문했다. 시기상 둘째 아들이 태어났거나 새 집을 장만한 걸 기념하려 했다는 추정이 유력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반전은, 정작 이 그림이 의뢰인 부부에게 단 한 번도 전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레오나르도는 그림을 붙들고 몇 년째 계속 덧칠하고 다듬었고, 결국 완성작을 넘기지 않은 채 자기가 소장해버렸다. 주문받은 부부 초상화 한 점이, 어쩌다 화가 자신이 평생 놓지 못한 개인 작업이 되어버린 셈이다.
눈썹은 왜 없을까
이건 지금도 딱 하나로 정리되지 않은 미스터리다. 크게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 당시 피렌체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 이마를 넓어 보이게 하려고 눈썹과 이마 위 머리카락을 뽑는 게 유행이었다는 설. 둘째, 그림이 애초에 미완성 상태였다는 설 — 레오나르도가 눈썹까지 정교하게 마무리하기 전에 멈췄다는 것. 셋째, 가장 흥미로운 설인데, 프랑스 엔지니어 파스칼 코트가 2007년 초고해상도 스캔으로 그림을 분석한 결과 원래는 눈썹과 속눈썹이 그려져 있었는데 수백 년에 걸친 세척·복원 과정에서 누군가 지워버렸다는 것이다. 눈 주위 물감의 미세한 균열이 유독 옅어져 있는 흔적이 그 증거로 제시됐다. 어느 쪽이 진짜인지는 레오나르도 본인 말고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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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확대해보면 눈썹은커녕 속눈썹 흔적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매끈한 이마가 곧바로 눈두덩이로 이어질 뿐이다.
그런데 왜 '미인의 대명사'가 됐을까
사실 지금 기준으로 처음 이 그림을 보고 "저게 그렇게 예쁜가?" 싶은 사람이 적지 않다. 눈썹도 없고, 표정도 무덤덤하고, 화려함을 과시하는 자세도 아니다. 당연하다. 이 그림이 그려지던 시대의 미인 기준 자체가 지금과 달랐다. 넓은 이마, 둥글고 통통한 얼굴, 차분하고 절제된 표정이 당시 피렌체 상류층 여성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이었다. 화려하게 꾸미기보다 정숙하고 기품 있어 보이는 쪽이 미덕이던 시대다.
그리고 더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모나리자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진짜 원동력은 얼굴 생김새가 아니라, 스푸마토 기법이 만들어낸 전례 없이 사실적인 표현력과 정답 없는 미소가 주는 신비감, 그리고 앞서 말한 1911년의 도난 사건이다.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그림 = 제일 아름다운 여자"라는 등식이 사람들 머릿속에 굳어지면서, 정작 얼굴 자체보다 '모나리자'라는 이름 그 자체가 미(美)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유명해서 미인이라고 여겨지게 된, 일종의 문화적 착시인 셈이다.
조용필의 노래 '모나리자'는 무슨 뜻일까
1988년 조용필 10집에 실린 히트곡 '모나리자'(박건호 작사)는 정작 미술 이야기가 아니라 짝사랑 이야기다. 가사에는 "미소가 없는 그대는 모나리자", "눈물이 없는 그대는 모나리자"라는 구절이 반복되는데, 여기서 '모나리자'는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한 연인을 가리키는 비유로 쓰였다. 웃지도 울지도 않아서 속마음을 도무지 읽을 수 없는 상대 — 화가조차 정답을 남기지 않은 저 알쏭달쏭한 미소가, 반세기 가까이 지나 한국 가요 속에서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비유로 되살아난 것이다.
책으로 만나는 「명화이야기」
이 글은 「명화이야기 — 그림 속에 숨은 진짜 이야기」(이평수 지음)에 실린 101편 가운데 「001. 모나리자」 편입니다. 도난, 광기, 사랑, 질투, 미스터리까지 101점의 명화로 읽는 인간 이야기를 책으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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